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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강변 산책 정도겠거니 했는데, 발 아래 3,000년 전 청동기 시대 마을이 통째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였음에도 문막섬강 투어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평점 97.6을 기록했다는 결과가 납득될 만큼, 이 강에는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습니다.
강 이름 하나에 담긴 1,000년의 역사
저도 처음엔 '섬강'이라는 이름이 강 안에 섬이 있어서 붙은 줄 알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강 이름은 지형이나 색깔에서 따온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이름 하나를 따라가다 보니 신라 말기 왕권 붕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펼쳐졌습니다.
섬강의 물줄기는 홍천·횡성·평창 경계에 위치한 해발 1,261m의 태기산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태기산이란 섬강 본류의 발원지로, 이 물이 횡성호와 간현을 지나 부론 흥원창에 이르러 충주호 물과 합류하면서 남한강 지류를 이루는 곳입니다. 지도 위에서 보면 강원도 내륙을 길게 꿰뚫고 내려오는 형태입니다.
이 강에 처음으로 이름이 붙은 건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신라 말기입니다. 당시 혜공왕 이후 150년간 20명이 넘는 왕이 교체될 만큼 왕권이 흔들렸고, 그 틈을 타 지방 호족들이 각지에서 세력을 키웠습니다. 강원도 일대를 장악했던 호족 양길이 이 이름 없는 강을 처음으로 '달강(達江)'이라 불렀습니다. 달강이란 달빛을 품은 강이라는 의미로, 이후 '월천(月川)'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 이름이 다시 바뀐 건 조선 시대입니다. 간현 철교 앞 오형제봉 바위에 토정 이지함이 '병암(屛巖)', 즉 병풍바위라는 이름을 새겼는데, 그 바위 위에 큰 두꺼비가 새끼를 업은 형상이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두꺼비를 뜻하는 한자 '섬(蟾)'을 써서 섬강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섬(蟾)이란 두꺼비라는 뜻과 동시에 달·달빛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어, 양길이 붙였던 '달강'의 정서를 고스란히 계승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문막 주민들이 이 강을 '문막섬강' 또는 '달강'이라 부르는 것이 역사적으로 더 적절하다는 주장은 충분히 근거가 있습니다.
해설을 들으면서 제가 인상 깊었던 건 이 이름의 계보가 단순한 지명 변천이 아니라, 신라 말 혼란기→후삼국 호족 시대→조선 사대부 문화로 이어지는 역사의 단면을 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강 이름 하나가 이렇게 많은 시대를 품고 있다는 게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 달강(達江): 호족 양길이 붙인 최초의 이름. '달빛 흐르는 강'이라는 뜻
- 월천(月川): 달강에서 파생된 중간 명칭. 달·빛을 한자로 풀어 쓴 형태
- 섬강(蟾江): 조선 시대 토정 이지함과 두꺼비 바위에서 유래. 두꺼비+달빛의 이중 의미 내포

발밑의 타임캡슐과 사라진 선착장
청소년 해설사가 설명하는 수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아서 제가 직접 들어보고 놀랐습니다. 단순히 외운 내용을 읽는 게 아니라, 청중을 끌어당기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청소년 해설사에 대한 만족도가 평점 100을 기록한 것도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섬강변 선사유적터 이야기부터 꺼내자면, 이곳은 2010년 한강문화재연구원이 두 차례 정밀 발굴 조사를 실시한 곳입니다(출처: 한강문화재연구원). 충적대지, 즉 강물이 흐르며 흙을 쌓아 형성된 비옥한 평지 위에 청동기 시대부터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주거지 16동과 각종 구덩이, 무덤 흔적이 무더기로 확인되었습니다. 4층 지층에서는 기원전 8세기 청동기 중기 유적이, 더 깊은 5층에서는 기원전 11~12세기, 약 3,200년 전의 청동기 전기 마을 흔적이 나왔습니다.
제 경험상 발굴 현장 이야기는 수치가 많으면 지루해지기 쉬운데, 이날 해설에서 가장 효과적이었던 부분은 '집터 화재' 이야기였습니다. 11호~18호 집터가 통째로 불에 탄 채로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주민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생활 유물 221점이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출토된 것입니다. 어망추(그물추), 즉 그물이 물속에 가라앉도록 흙으로 빚어 만든 추 40점이 항아리 안에서 한 세트로 나왔고, 갈돌·갈판 같은 농경 도구도 함께 확인되었습니다. 출토된 석기 수량이 토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 이곳 문막리가 당시 석기 제조 공방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남한강 유역의 집터는 보통 방형 구조, 즉 네모반듯한 형태가 표준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북한강 상류 지역 특유의 가늘고 긴 직사각형 집터 유형이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북한강 상류에서 남쪽으로 이동해 온 집단이 문막에서 남한강 문화권과 접촉·융합했다는 증거로 학계에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 유물들이 현재 원주가 아닌 국립춘천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출처: 국립춘천박물관). 참여자들 사이에서 "문막 유물은 문막에 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것도 이해가 됩니다.
물굽이나루터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도 제 경험상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금은 조용한 강변인데, 고려·조선 시대에는 강원도 제1의 선착장이었다는 설명이 처음에는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70~80척의 배가 오갔고, 강원도 각지의 세곡과 산간 물자를 한양의 뚝섬·마포로 실어 나르고, 돌아올 때는 소금·젓갈·항아리 같은 생활용품을 싣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당시 문막 인구가 원주시보다 많았다는 기록도 있을 만큼 번성한 거점이었습니다. 선착장 길이가 약 1km에 달했고, 지금도 강변 곳곳에 큰 돌들이 산재해 있는 것이 그 흔적입니다. 저녁 노을 속에 뱃머리를 돌리는 나룻배들의 풍경, '문양귀범(文陽歸帆)'이 문막 8경 중 하나였다는 사실도 이날 처음 알았습니다. 문양귀범이란 저녁 무렵 문막으로 돌아오는 배들의 풍경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 문화유산이 지금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이, 그리고 섬강 속 약 20만 평의 섬이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골재 채취와 매립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이 제게는 가장 무거운 대목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섬강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쓰였나요?
A. 조선 시대부터입니다. 토정 이지함이 간현 오형제봉 바위에 '병암'이라는 글자를 새겼고, 그 바위 위의 두꺼비 형상에서 섬(蟾)이라는 한자를 따 섬강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양길이 붙인 '달강', 이후 '월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문막 주민들 사이에서는 '문막섬강' 또는 '달강'이라는 표현이 역사적으로 더 적절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Q. 문막섬강 선사유적터에서 나온 유물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보관·전시되어 있습니다. 2010년 발굴 당시 총 346점의 유물이 수습되었고, 이 중 화재로 인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221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막 현지에서 직접 볼 수 없다는 점이 투어 참여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Q. 물굽이나루터가 문막 8경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A. 맞습니다. 정확히는 저녁 노을 속에 문막으로 돌아오는 배들의 풍경, '문양귀범(文陽歸帆)'이 문막 8경 중 하나입니다. 고려·조선 시대에 하루 70~80척의 배가 오갔던 강원도 제1의 선착장이었으며, 지금도 강변에 선착장 돌 흔적이 약 1km 구간에 걸쳐 남아 있습니다.
Q. 섬강 속 섬은 지금도 있나요?
A. 현재는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본래 섬강과 샛강 사이에 형성된 약 20만 평 규모의 섬이었는데, 원주시 개발 과정에서 골재 채취와 매립이 이루어졌고, 그 자리에 현재 문막 일반산업단지와 도로가 조성되었습니다. 샛강의 일부 줄기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Q. 문막섬강 마을투어는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요?
A. 문막읍 주민자치위원회와 비영리 민간단체 청소년마을 노픈누리가 함께 운영하는 투어입니다. 청소년 해설사가 보조 해설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구체적인 일정과 참여 방법은 문막읍 주민자치위원회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결론
이날 투어를 마치고 제 경험상 가장 남은 감정은 아쉬움이었습니다. 강 이름 하나에 신라 말기의 정치적 혼란과 조선 선비의 문화적 감수성이 겹겹이 쌓여 있고, 강변 흙 속에는 3,200년 전 사람들의 그물추가 묻혀 있으며, 지금은 조용한 강변이 한때 강원도 최대 물류 거점이었다는 사실. 이 모든 이야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개발의 흐름 속에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는 점이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청소년 해설사들이 이 이야기를 직접 공부하고 목소리를 높여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 제가 이 투어에서 찾은 가장 밝은 장면이었습니다. 문막섬강에 관심이 생겼다면, 한 번쯤 강변을 직접 걸으며 돌 하나하나를 다시 보시기를 권합니다. 아는 만큼 다르게 보이는 곳입니다.
